기획
“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소방관의 자질”
여성 한계에 도전장을 던진 최영은 소방교
소방관이 되어야 할 자질에 대해 묻자, 그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직업정신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말한 그녀의 모습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인터뷰 내내 쑥스러워하는 한 명의 여성인 것은 분명했지만,
소방관으로서의 자세로 돌아갈 때면 그녀는 매우 당차고 생기가 넘쳤다. 바로 춘천소방서의 최영은 소방교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강원도 내 여성 소방공무원 중 최초로 화재대응능력 1급을 획득했다. 남자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 세계에서 당당히 화재대응능력 1급을 거머쥘 수 있었던
그녀만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 최은경 / 사진 포토마인드(이정도)

춘천소방서 후평119안전센터에 근무하는 최영은 소방교는 지난해 12월 8일 중앙소방학교에서 실시한 제11회 화재대응능력 1급에 합격했다. 강원도 여성 소방관으로는 최초였다. 그 어렵다는 화재대응능력 1급에 합격한 그녀는 놀라운 성과와 함께 따라온 많은 주목이 한편으로는 쑥스럽다고 전했다.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냐는 질문에 최영은 소방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저만의 한도를 정해두고, 그 한도에 맞게 제 능력을 가늠하고 실행에 옮기곤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제가 하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이 닥쳐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극복해내는 내 자신을 보면서 어쩌면 제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역량의 최대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화재대응능력 1급도 역시 내가 모르는 나의 잠재된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최영은 소방교는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지난 2016년에 임용되어 인명구조사 2급, 응급구조사 2급 등 다수의 인명구조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화재 현장과 위기 상황들 속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 뛰어난 업적과 더불어 이번 화재대응능력 1급을 취득하게 된 것에 대해서 그녀는 “물론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좋은 소방관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배워나가야 할 것이 많다.”고 밝혔다. 화재대응능력 1급이라는 자격도 결국 소방관의 실력을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하나의 자격 요건을 형식적으로 부여받은 것일 뿐이라는 것. 완성형 소방관으로 가는 길이 그녀에게는 스스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에 부딪혀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의 연속일 뿐이다.


그녀가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멋진 본보기가 되어주신 아버지 때문이었다. 최 소방교의 아버지 역시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몸이 아픈 어머니에게 직접 구급처치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밝힌 그녀는 “아버지를 보면서 누군가를 돕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워낙에 운동을 좋아하시는 분이셨어요. 특히 축구를 정말 좋아하셨죠. 그런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저도 축구를 정말 좋아했답니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 축구를 하다가, 많은 부상들이 생기게 되면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죠. 몸을 쓰는 운동을 좋아하면서도 먼저 나서서 남을 돕는 일을 좋아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 왔으니 말이죠. 그래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저에게는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최영은 소방교에게 소방관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고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솔직히 매번 출동을 할 때마다 항상 뿌듯합니다. 그중 새해가 되니까 기억에 남는 출동이 있기는 하네요. 매해 1월 1일이 되면 갓 스무 살이 된 친구들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잖아요. 몇 년 전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1월 1일 새벽에 출동을 나간 적이 있어요. 한 친구가 구토를 하고 정신을 못 가누고 누워있으니까 친구들이 걱정이 되어서 신고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가서 살펴본 결과 큰 이상은 없었고, 단순 주취상태로 파악되어 기본 처치를 하고나서 주변 정리를 했죠. 그러고 나서 조금 더 먼저 어른이 된 자격으로 술이 어떤 것인지 어린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조심해야 할 점들을 일러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어서 소방관 생활 중 힘든 시간도 있었다고 밝힌 그녀는 “출동 현장에서 힘들었다기보다, 교관생활을 하면서 소방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하는 것에 스스로 한계가 있고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가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라며,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점을 체감하면서 제 스스로에 대해 채찍질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채찍질을 한 결과, 새로운 다짐도 하게 되고 한 단계 성장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런 긍정적인 영향은 소방관 모두에게 큰 시너지가 되지 않을까요?”

‘화재대응능력 1급에 합격한 강원도 최초의 여성 소방관’이라는 타이틀은 앞으로 소방관으로서 살아갈 최영은 소방교에게 한 가지 자격증에 불과할 뿐, 그녀가 소방관으로서 가진 진심과 노력을 대변해줄 수 있는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소방관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덕목으로 ‘계속 현장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꼽았다. 아직 대한민국 정서에서 여성 소방관은 남자에 비해 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 소방교의 존재는 훌륭한 여성 소방관을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영은 소방교는 “솔직히 남녀가 선천적으로 근력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걸 무시할 수는 없더라고요. 교관근무를 할 때도 오르막길을 뛸 때면 확실히 다리 힘이 부족하다 보니 남자 교육생들보다 조금 처지는 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고, 최대한 그 격차를 대처 능력, 순발력 등 다른 능력들을 통해서 메우려고 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점을 최대한 집중해 보완하려고 노력한다면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자신으로 거듭나게 되지 않을까요? 모두 다 같이 자신의 약점을 찾아 이겨내려고 해봅시다!”라며, 응원의 메시지도 남겼다.
올해 막 서른 살이 된 젊은 소방관, 최영은 소방교에게도 꿈이 있다. 그녀는 그 어떤 수식어로 고정되지 않는, 그 어떤 다양한 상황이 닥쳐도 그 앞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다른 소방관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소방관이 되고 싶습니다. 소방관들이 서로서로 영향을 받고 가능성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자극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 긍정적인 영향은 소방관 모두에게 큰 시너지가 되지 않을까요?”
여성이 아닌 소방관으로서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 노력을 이어온 최영은 소방관, 그녀 덕분에 젊은 소방관들의 미래가 더욱 밝아보이는 건 아닐까.